사회복지 일기

사회복지사 소진 번아웃에 관한 단상

시골공무원 2021. 9. 24. 10:29

현대사로 사회복지사 소진을 찾아보려는 억지를 부려보자!!

사회복지를 처음 배울 때 들었던 가장 생소했던 단어가 소진이었다. 소진, 예쁜 여자아이 이름으로 지었으면 참 고울법한 이름이기도 하다. 헌데 이 예쁜 이름이 몇 만명의 사회복지사를 옭죄는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나는 이 생경한 말이었던 소진의 근원을 현대사 안에서 짚어 보고 싶다. 물론 소진은 개인적, 환경적 차이에서 올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 사회복지사들이 소진의 터널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나는 해방 후 한국의 역사 안에서 그 근원을 찾아보고 싶다.

 

시간의 순차대로 몇 가지 역사적 기점을 제시해본다면 아래와 같다.

1) 8.15 해방 2) 한국전쟁 3) 4.19혁명에서 87년 6월항쟁 까지

나는 위의 기점을 중심으로 해서 한국에서 사회복지와 사회복지사에 대한 낮은 인식과 사회복지사들의 소진 문제, 그리고 안일했던 사회복지계의 대응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1) 8.15 해방 <첫 단추를 잘못 꿰다>

나는 8.15 해방이 매우 불쾌하다. 진정 싸워서 쟁취하였느냐의 원론적인 고민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화두이다. 내가 노력해서 가꿔놓은 것과 공짜로 주어진 것의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 없이 전자를 애지중지 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방은 어쩌면 공짜로 주어진것처럼 보인다. 그랬기 때문에 갑작스런 해방공간에서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 있어 일제강점기 때의 기득권층이 더욱 득세하게 된다. 남북한 이념의 대치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극우반공 세력으로 인해 복지국가의 기본을 다져줄 노동계급들의 정당한 복지정치에 대한 접근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복지국가란 무엇인가? 당초 서구 유럽의 복지국가는 노동/시민 계급들의 계급정치를 통해 봉건주의를 타파시키고 그 위에서 노동계급들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사회변혁을 불러오고 민주화를 이뤄낸 것이 서구의 복지국가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보수우익의 매카시즘적 반공 이데올로기는 우리나라의 복지국가 뿌리부터 흔들어 놓고 말았다. 지금도 복지를 주장하면 좌익이 되고 좌익은 빨갱이가 되고 빨갱이는 국가 성장을 저해시킨다는 논리를 뉴라이트 쪽에서 외쳐대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결과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회복지의 정통성이 없는 대한민국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2) 한국전쟁 <복지는 자선이다>

한국전쟁은 실로 가공할만한 위력으로 대한민국을 적어도 50년은 퇴보시킨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 퇴보의 제일 끝자락에 간당간당 매달려 있는 것이 나는 한국의 사회복지라고 생각한다. 이미 수업시간에도 언급된바 있지만 한국전쟁 직후 전쟁 난민에 대한 일시적 구호가 주종을 이루었다. 그것도 국가가 아닌 외국의 종교기관, 민간 사회복지 기관에 의해 주도되었다. 방만한 물량공세로 시작된 외원구호 중심의 복지로 인해 사회복지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자선 및 구호에 대한 개념으로 각인 되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서 여전히 사회복지는 사람들에게 자선과 구호의 가장 기초적인 개념으로 자리잡혀 있다. 그래서 아직까지 사람들은 사회복지사를 착한일 하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해방과 한국전쟁 정리

해방과 한국전쟁은 이 사회에 복지의 시작을 자선과 구호의 일방적 시혜로 시작하게 만들었다. 서구 사회와 비교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권리 주체가 되기 위해 싸워서 쟁취하였느냐? 아니면 일방적인 구호의 대상으로 공짜로 쟁취하였느냐? 이다. 복지는 무산계급이 계급정치를 통해 유산계급으로부터 잉여자본을 확보해나가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인류보편적 공동선의 가치로 봤을 때도 이는 정당하다고 생각된다. 함께 나누는 것의 적절한 합의!! 이것이 복지의 시작인데, 갑작스런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은 유산 계급의 자리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고 이를 지켜내기 위한 정치공세들은 결국 무산계급을 반공의 굴레로 얽어매어 계급을 통한 복지정치를 완전 차단시켜 버렸다. 결국 복지는 있는 놈들이 못난 놈들의 불만을 최소한으로 무마시키기 위한 당근 정도로 밖에는 활용되지 못한 시기였다. 대한민국에서 사회복지는 사생아다.

 

3) 4.19혁명에서 6월항쟁까지

박정희와 전두환의 집권배경 및 통치 스타일은 매우 비슷한 것 같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집권을 하여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국민으로부터 인심을 얻기 위해 수많은 복지정책을 쏟아냈다. 우리 복지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부분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복지 입법이 이뤄졌지만 그 시행의 배경이 바로 부정한 정권에 대한 대국민 인심용이었기 때문에 그 실효성은 많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는 한국전쟁 전 남로당 활동 경력을 그의 정치 이력에서 떼어내기 위해 반공을 제 1 국시로 삼고 좌익 배격에 열을 올렸다. 이런 영향으로 인해 국내에서 일어나는 각종 노동운동 및 계급 정치를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복지는 단지 독재 국가 존속에 허울로 거들어주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전두환은 두말할 나위 없이 박정희를 모델로 삼아 역사의 고리가 순환되는 것을 그대로 보여줬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4.19 혁명과 사회복지를 논해보면 4.19는 한국전쟁이후 전국적 규모로 민중들의 권리투쟁이 일어난 첫 사건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거시적으로 봤을 때 복지권에 대한 갈망이다. 정치권, 사회권, 생존권 등등 4.19를 일으키게 된 이런 하위개념들은 통틀어 나는 복지권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혁명이 5.16이라는 쿠데타로 희석되지만 않았다면 우리나라에도 계급투쟁을 통한 복지권의 성장을 비약적으로 일궈 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쿠데타로 집권한 불순한 위정자들은 성장잠재욕구를 가진 민중들을 이념 공세로 묶어 버리고 공포정치로 일관하게 된다. 사회복지실천동향(최일섭)의 202페이지를 보면 ‘60년대 이래 20년간 지속된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군사정부의 장기집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사회복지 실천현장의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정말 토할 것 같은 문구다. 20년간 지속된 장기 집권의 폐해로 인해 상처받은 다수의 민중이 바로 사회복지 실천의 대상인데 무엇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지 모를 말이다.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군사정부의 기계론적인 성장 이론으로 인해 저곡가, 저임금 정책으로 세계 유일 없는 혹독한 노동환경에서 쓰러져간 클라이언트들을 사회복지 실천현장은 오히려 외면하고 모르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이 시기에 사회복지 실천현장에 활동가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기도 했지만 사회가 요구하고 필요로 할 때 제일먼저 있었던 사람들이 워커가 아니라 시민단체 활동가들 또는 노동운동과 같은 사회운동 세력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사회복지사가 시대의 이슈에 민감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함께 변혁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복지사가 더 인정을 못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87년의 상황은 더욱 그러하다 하겠다. 정치적 격변기와 민주화대투쟁을 통해 이른바 중산층계급과 노동계급의 연대로 비약적인 시민사회의 발전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조차 사회복지계는 이런 큰 축에 끼어들지 못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해방공간에서 사생아처럼 태어난 복지라서 그런건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해방에서 최근까지 복지가 자생적으로 태동할 수 있도록 추동시킬 수 있는 복지계의 힘은 너무 약했다. 이런 현대사의 흐름 안에서 복지계가 적재적소에서 활약을 못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사회복지 또는 사회복지사의 인식이 비전문영역에서 머물고 있고 이런 골 깊은 왜곡된 인식이 알게 모르게 사회복지사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인식들이 결국 사회복지사들을 박봉 + 격무로 내몰고 있는 겪이기도 하다.

 

정통성 없이 태어난 사회복지, 부당한 정권의 기여자로서의 복지, 시민계급의 투쟁 선상에서조차 함께하지 못한 복지 그리고 자선으로서의 복지 인식, 역사 안에서 이런 인식들이 사회복지사의 존재 자체를 위축시키고 작게 만들어 버린다. 자격제도 또한 허술하기 짝이 없어서 간호사처럼 간호학을 대학에서 전공을 해야만이 자격시험을 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학점만 이수되면 자격을 발급하고, 또 교수들의 밥벌이를 넓히기 위한 것인지 무분별한 사이버 교육의 확장을 통해 사회복지사의 격은 더욱 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여전히 희생과 사랑, 봉사를 강요하는 교육을 하고 있고 현장에서 싸워서 이기는 사회복지사를 양성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만만한게 사회복지사냐? 사회복지사의 소진... 이런 과거와 현실을 안다면 당연하게 소진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