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숨겼었다.
사회복지관에 근무하던 중 노인요양원 사무국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요양원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두고 그만두었다. 법인 기관장님들과 잘 아는 사이인 나로서는 이렇게 관둔 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것이 영 개운치 않았었고 행여 또 불합격하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있어 공무원 시험 준비는 숨긴 채 독서실을 부지런히 다녔다. 주 2회는 모교에서 사회복지학 강의를 하였고 남는 시간엔 공부에 매진했다.
그 때 같은 독서실에 예전에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 사회복지사로 직장을 다니면서 1급 사회복지사 시험 공부를 하고 있어 마주치게 되었다. "어~ 교수님...교수님이 독서실에 왠 일이세요?" 나는 뭐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자격증 공부 중인데 단기간에 하나 따야해서 라고 대충 둘러댔다. 그리고 독서실을 다시 옮겨버렸다. 아직 배가 덜 고팠는지 먹고 살기 위해 뭔가 준비하는 것에 있어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부끄러운 일이다.
필기시험에 들어서며
한 달 반정도를 독서실에서 책에 매진하면서 사회복지학은 김진원, 사회는 민준호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다. 솔직히 평가해보면 김진원 선생은 매우 열심히 가르치고 열정이 넘치는 느낌이 많이 들었었고, 민준호 선생은 경상도 사투리 구수하게 쓰면서 인간적인 면이 있고 쉽게 쉽게 잘 가르쳐서 공부하기가 편안한 강사였다. 사회복지학은 뭐 살짝 사짜긴 해도 대학에서 5년간 강의하면서 나도 공부를 계속 했으니 따라잡기가 좋았고, 사회는 법률, 정치는 살아온 짬이 있어서인지 쉽게 이해했지만 경제는 정말 수학적 사고가 완전 꽝인 나에게 감옥과 같은 존재였다. 다행인건 경제 계산관련 문제는 나오지 않았기에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서울이야 외갓집이 있었기에 자주 가봤다지만 여전히 시골 사람에겐 심리적 압박감을 주는 곳이기에 필기시험 당일에 올라가기 보단 전날 가서 좀 휴식을 취하며 긴장을 풀고자 광진구 어느 중학교에서 치루기 위해 하루 전날 상경했다. 동네에 좋은 숙소가 없어 아무 모텔이나 들어갔는데 완전 패착이었다. 옆방엔 조선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밤새 노름을 하였다. 한국말로 때로는 중국말로 큰 소리로 밤새 즐기시더라, 덕분에 나는 한 시간을 채 못자고 시험장에 들어서야 했다. 시험 직전에 담배 한 대 길게 땡겨주고~ 이제 첫발을 딛어보자 하며 스스로를 응원하며 시험을 치루었다.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한 것일까 총 40문제 중에서 36문제는 그래 이게 정답이야라고 내가 누군가를 가르쳐도 될만큼 풀어냈고, 각 과목 2문제씩은 소위 통밥을 찍었다. 이 중에 다 틀려도 그래!! 평균90이니 필기 합격자 1.5배수 안에는 들어가겠다. 확신이 섰다. 한편으로는 이게 시험이 너무 쉬워서 평균이 막 오르는거 아냐? 불안감도 있었지만 시험을 치룬 후 아는 지인들을 몇 만났는데 다들 시험이 너무 어려웠다고 했다. 지인에겐 미안하지만 필기시험은 무난하게 통과하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시골에 내려온 후 이틀 정도는 간만에 푹 쉬었고, 면접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필기시험을 1.5배수로 합격시킨다 하니 필기 합격은 확신했기에 합격 발표 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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