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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선별적 복지의 조화를 위해

시골공무원 2025. 4. 12. 10:04

2009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는 우리 사회에서 복지 담론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김상곤 후보가 제안한 전면 무상급식은 복지의 보편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뒤흔든 의제였다. 이후 경기도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보편적 급식이 확대되며, 급식은 교육과정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그러나 무상급식이라는 용어 자체에는 문제가 있다. 선거 전략상 강한 호소력과 대중의 이해를 돕는 효과는 있었지만, 복지의 본질을 정확히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자선을 제외하고, 복지 서비스에 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급식 비용은 누군가가 부담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바로 사회 전체다.

, 국민이 세금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 서비스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공공 급식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무상 복지보다는 공공 서비스로 용어를 바꿔야

 

복지 용어의 혼용은 시민들이 복지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무상이라는 표현은 일부 계층에게만 특별히 제공되는 혜택처럼 보일 수 있으며, 이는 복지를 시혜적 배려나 특혜로 오해하게 만든다. 결국 복지를 요구하거나 누리는 이들을 낙인찍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복지는 특정 집단을 위한 시혜가 아니라, 모든 시민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이며, 사회 전체의 안전망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복지를 설명하는 언어 하나에도 사회복지의 철학이 담겨야 하며, 그 철학은 권리로서의 복지라는 관점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 전환은 2000년 제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법은 이전의 잔여적·선별적 구호 중심 복지에서 벗어나,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는 보편적 복지의 기반을 마련했다. 복지를 시혜가 아닌 권리로 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한편,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표현 역시 재고가 필요하다. 이 표현은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한 무분별한 복지 확대를 의미하며, 비판적 맥락에서 자주 사용된다. 하지만 실상은 이 용어가 복지 정책의 정치 도구로 남용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인은 국민의 요구를 반영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국민이 바라는 복지 정책을 설계하고 실현하는 일은 오히려 정치의 본령에 가깝다.

복지 확대 정책이 인기를 끌었다면, 이는 사회 구성원의 필요와 기대가 반영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복지 담론을 남발이나 과잉이라는 식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복지를 둘러싼 정치적 수사가 시민의 권리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 복지는 죄가 없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을 왜곡하는 언어와 프레임이다.

 

 

자본주의를 돕기 위해 태어난 사회복지

 

1990년까지만 해도 한국의 복지 수준은 매우 낮았다. 생활보호법은 오직 만 18세 미만 또는 60세 이상의 극빈층만을 대상으로 했다. 사회복지의 기본 토대조차 없는 상황에서 보편과 선별의 논쟁은 사치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이후 경제 수준이 향상되고 복지 제도가 점차 확대되면서야 비로소 보편 복지선별 복지사이에서 방향을 설정하려는 진지한 논의가 가능해졌다. 이는 사회의 성장과 함께 복지에 대한 문제의식도 함께 성숙해졌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전히 보편 복지와 선별 복지를 대립적인 개념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복지를 도입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복지는 처음부터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였다. 자본주의 초기에 5세 아동부터 하루 18시간 노동에 시달렸고, 많은 이들이 20세가 되기도 전에 병들어 죽었다. 생산성은 급격히 떨어졌고, 결국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복지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아동 노동 금지, 의무교육, 노동시간 단축, 임금 보전 등의 제도는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임으로써 생산성을 끌어올렸다. 복지는 재화의 직접적 분배만이 아닌, 사회 전체의 생산 역량을 끌어올리는 간접적 동력이었다. 이후 복지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중시하는 정책으로 진화하게 된다.

복지가 제대로 작동하면 노동자는 더 안정된 환경에서 생산에 기여하고, 생산의 증가는 다시 복지로 환원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반면 복지를 반대하는 국가들 상당수는 정치적으로 미성숙하거나, 부의 불균형이 심각하거나, 독재 권력이 유지되는 곳이다. 사회복지의 확대는 단순한 지출 증가가 아니다. 이는 일반 국민에게는 경제 민주화로, 부유층에게는 기득권의 제한으로 인식될 수 있다. 자원과 권력을 집중적으로 가진 20%의 계층에 있어 복지는 그들만의 리그를 위협하는 요소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복지는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제도이다. 더 많은 사람이 기본적인 교육과 의료, 주거,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야 노동 시장도 활기를 띠고, 저출산 같은 구조적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보편과 선별 선택이 아닌 수단으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보편과 선별의 이분법적 논쟁이 아니라, 전면적인 복지 확대다. 이 과정에서 보편과 선별은 대립 항이 아니라 효율적 정책 설계를 위한 방법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아동수당이나 학교 급식은 아동이라는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선별적이다. 그러나 그 대상 안에서는 모두에게 동일 적용되므로 보편적이다. 경기도에서 공공 급식이 처음 도입될 당시, 반대 측은 대기업 회장 손자도 세금으로 밥을 먹는 게 말이 되느냐며 논쟁을 단순화했다. 이에 따라 세금은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가야 한다.’라는 프레임이 힘을 얻었다. 하지만 정작 그런 식으로 급식을 제한하면, 저소득층 아이들은 혜택을 받으면서도 낙인을 감수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오히려 모두가 함께 누리는 방식이 낙인을 피하고 정책 수용성도 높일 수 있다. 대기업 회장 손자도 밥을 먹어야 한다. 대신 세금을 더 많이 내면 되는 일이다. 도로를 예로 들어보자. 도로는 대기업 회장이 낸 많은 세금과, 내가 낸 적은 세금이 함께 들어가 만들어졌지만, 모두가 그 위에서 시속 100km로 같이 달린다. 이처럼 우리가 이미 누리고 있는 수많은 공공 인프라교육, 도로, 지하철, 경찰, 소방, 공공도서관모두가 보편적 복지의 일환이다.

문제는 새로운 복지 정책이 등장할 때,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과도한 재정 불안을 느낀다는 점이다. 최근 저출산 문제로 인해 아동수당, 부모 급여 등의 현금 지원이 도입되었지만, 보다 근본적 해법은 교육, 의료, 주거와 같은 구조적 공공복지의 확충이다. 복지가 미비하고 삶이 불안정할수록 출산율은 자연히 줄어든다. 이는 초기 자본주의가 경험했던 경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복지와 생산이 선순환임을 명확히 인식할 때다. 교육, 노동, 의료, 주거, 노후, 출산, 정보격차 등 사회 전반의 불안 요소를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는 복지의 전면적 확대가 필요하다. 복지는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이며, 그 설계의 방식으로서 보편과 선별이 존재한다. 보편과 선별은 선택지가 아니라 수단이다. 본질적인 질문은 이 사회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