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에서 ‘노후 유망 자격증’을 검색하면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평생교육 사이트에서도 쉽게 관련 과정을 찾을 수 있고, 웬만한 대학에는 사회복지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사회복지사는 이제 많은 이들에게 직업으로서 알려져 있고, 사회복지학과는 진학 희망 학과로도 널리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던 1995년의 상황은 지금과는 달랐다. 적성에 맞지 않았던 영문학과를 한 학기 만에 자퇴하고, 1994년을 말 그대로 한량처럼 보내며 입시를 놓쳐버렸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 전문대학의 사회복지과 진학을 권유하셨다. 당시 전문대학에는 경영과, 행정과, 법과 등이 있었고, 선생님은 사회복지과를 그저 4년제 사회학과의 전문대 버전쯤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권유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사회복지 있어도 있는 줄 몰랐던 시대
당시만 해도 ‘사회복지’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부모님은 “봉사활동 하러 대학 가느냐”며 질책하셨고, 나 역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면 자선사업가가 되는 줄로만 알았다. 구세군 빨간 냄비 앞에서 종을 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진학을 결심했다. 곧바로 입대했고, 제대와 함께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이했다. 대우, 기아, 한보, 각종 백화점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들이 연일 무너졌고, 거리는 실직자들로 넘쳐났다. 그전까지는 경제가 쉬지 않고 성장했기에 사회복지 정책의 기반도 미약했고, 사회 전체가 위기에 대응할 준비가 부족했다. 실직한 가장, 부도난 경영인의 자살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왔고, 서울역에는 멀끔하게 양복을 입은 노숙인들이 줄지어 있었다. 개발도상국으로는 유례없는 고속 성장을 하다가 맞은 직격탄이었다. 입대 직전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대기업 지방 사무소에 고졸 학력으로도 관리직 입사가 가능했고, 먼저 전역한 선배는 신촌의 한 백화점에 고졸 영업사원으로 취직해 후배들에게 간식을 보내주기도 했다. 의지만 있으면 취업이 되던 시절이었기에, 사회복지 기반이 약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구제금융 사태로 사회복지 패러다임 전면 등장
정책은 일반적으로 사회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이 공론화되어 의제가 설정되고 분석과 평가를 거쳐 형성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오랜 시간 권위주의 국가를 거쳐오며, 많은 정책이 집권 세력의 입맛대로 만들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1997년 12월의 구제금융 사태는 전환점을 만들어 냈다. 민주 정부가 수립된 이후 처음 맞이한 국가적 경제위기였고,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는 어느 때보다 강하게 형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대안이 논의되었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정치적 조건 또한 갖추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회복지라는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이 처음으로 전면에 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복지 확대의 관점에서 보면, 소위 ‘위기가 기회가 된’ 대표적인 사례였다. 정상적인 민주 정치가 성숙하고 경제가 안정된 나라에서는 보통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통해 복지가 확대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위기를 진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대응으로서 사회복지가 급속히 부각 됐다. 그 결과, 각종 사회복지 법령이 제정되고 복지와 성장이 동시에 국가적 의제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표면적으로는 '복지 전성기'의 시작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사회 전체가 큰 불행 속에서 구조적 전환을 강요받던 시기였다.
씁쓸함만 안기고 있는 자격증의 인기 상승
경제적 위기로 사회복지가 확대되면서 사회복지사 일자리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에 따라 기존의 가정관리학과나 행정학과에서 사회복지학부로 개편되거나 사회복지사 자격 과정을 신설하며 저변을 넓혔다. 1983년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시작됐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그러다 2003년 1급 국가시험이 시행되고 수많은 평생교육원에서 자격증을 딸 수 있게 경로가 개방되며 상황은 변했다. 이전에는 정규 대학의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해야 자격증 발급이 가능했지만, 사이버대학과 평생교육 과정이 생기면서 학점제 기반의 자격 취득이 가능해졌다. 필수 14과목만 이수하면 자격증이 발급되는 구조로 바뀌자, 2005년에는 신규 발급자 수가 2만 5천 명, 누적 12만 명이던 사회복지사는 2022년엔 신규 9만 명, 누적 130만 명을 돌파하며 무려 10배 이상 증가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누구나 손쉽게 딸 수 있는 국가자격증으로 홍보되면서 국민 자격증, 노후 유망자격증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2000년대 초반까지 낮은 급여로 오늘 퇴직하고 내일 바로 출근할 수 있던 채용 환경이 복지 예산이 확대되고 급여가 오르면서 이직률이 낮아졌다. 노인 일자리나 돌봄 등 신규 사업이 확장되면서 계약직이 생겼고 – 2000년까지 사회복지 노동 현장에 계약직이란 개념은 없었다고 보면 된다. - 이직률이 낮아지며 신규 취업에 어려움이 생겼다. 사회복지사의 임금은 수요공급의 탄력성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비영리 분야이고 해마다 보건복지부의 급여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가 확대되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한 장사치들의 놀음에 손쉽게 딸 수 있는 자격증으로 전락하면서 사회복지사의 전문성 논쟁은 여기서 1패를 했다. 사이버대학까지는 양보하더라도 평생 교육과정에서 손쉽게 딸 수 있다는 광고 문구는 나의 마음을 쓰리게 했다. 사회복지학과에서 배출된 석박사들의 밥그릇 확장에 이용된 것 같아서다.
국민 자격증의 냉혹한 현실
국가자격증을 손쉽게 딸 수 있다 보니, 사회복지사 자격증은 노후 대비 유망 자격증으로 꾸준히 홍보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30년 이상 한 직장에서 일하는 고용 안정이 어느 정도 이뤄졌고, 그만큼 사회복지사로서의 재취업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이다. 정규직의 이직률이 낮아지다 보니, 새롭게 생기는 자리는 대부분 계약직 중심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회복지사의 대우가 좋아서 경쟁률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취업의 문 자체가 '바늘구멍'처럼 좁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관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기획·홍보·행정·행사 진행 등 하나의 역할에 국한되지 않고 다방면의 역량이 요구되다 보니, 실무에서 바로 뛰어들기 어려운 중장년층을 채용할 이유가 많지 않다.
여전히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사람은 많다.
손쉽게 딸 수 있다는 매력, 그리고 전문성을 요하지 않는다는 오해 때문이다. 착한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취업할 수 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막상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그 인식과는 다른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다음 장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착한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자원봉사에 가깝다. 사회복지학은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법학 등을 두루 아우르는 간학문적 응용 사회과학이다. 따라서 이 분야를 '제대로' 공부하고 실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자격증을 취득한다고 해서 곧장 정규직으로 취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그 현실을 직접 겪었다. 종합사회복지관에서 10년간 팀장으로 재직했고,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대학과 사회단체에서 강의를 5년간 할 정도로 나름의 전문성을 갖춰 왔다. 그럼에도 40세에 복지관을 퇴사한 후 재취업의 문은 냉정하게 닫혀 있었다.
결국 42살에 모든 제한이 없는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고, 8년째 일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말해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 생계를 위해 살아가는 느낌이다.
자격제도 개선은 먼 산 불구경으로
제도란 더 나은 방향으로 계속 개선되어야 하지만 높은 사람들의 눈에 큰 관심 없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의 제도 개선은 회복할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졌다고 본다. 자격 취득 기준을 높인다 한들 처우가 좋아질 일도 없고 대략 40만 정도 되는 사회복지 노동자들이 단체 행동으로 정부를 위협(?)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참 착한 사람들이다. 개별 사업장으로 노동 유연성이 높은 편이고 노동조합이 없어 규모의 경제로 덤벼들기 어렵다는 것을 높은 사람들도 다 알고 있다. 한국사회복지사협회 회비 납부율을 보면 사회복지사가 얼마나 스스로 일깨울 힘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직종의 결속력이 좋을수록 협회의 회비 납부율이 대개 높다. 그러나 한국사회복지사협회는 협회비 징수가 어려워 신규 자격증 발급 비용을 첫 협회비 명목으로 받고 있다. 이는 협회비를 명목으로 자격증 갱신 조건을 걸 만큼 처우 개선에 나설 힘이 없는 구조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년 선거 때 사회복지사 처우 개선이 단골 공약으로 나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사회복지사 처우 개선은 국민에게 돌아가는 혜택
사회복지사는 국민 복리 증진을 최우선 목적으로 일하는 그야말로 국민의 안녕을 책임지는 직업이다. 1999년까지 생활보호법 상으로 만 18세 미만과 만 60세 이상에게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던 것이 이제는 아동, 가족, 노인센터 등 전 세대에 걸쳐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민간 복지 분야 사회복지사가 공무원은 아니지만 사회복지서비스의 국가 책임을 실현하는 전달체계의 최일선에 있기에 민간 사회복지사라도 공공의 성격이 짙다. 사회복지사의 자격제도와 비약적인 처우 개선의 결과 종국의 혜택은 국민에게 돌아간다.
결국 사회복지사 자격증의 인기 상승이 웃을 수 없는 현실인 것은 소위 우는 아기에게 젖 물린다는 격으로 사회복지계에서 목소리와 결집이 없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의 열 번째 법정 공제회가 된 한국사회복지공제회가 생겼을 때 나는 너무나 기뻐했지만 대부분 사회복지사는 신뢰로 답하지 않았다. 최초 시작된 5.04%의 높은 이율로 제시한 공제 상품이 없어졌다는 것이 증거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현실을 잘 알고 도전해야 한다. 나는 10년이면 퇴직이다. 결국 사회복지사의 비약적인 성장은 못 보고 국민 자격증, 노후 유망자격증에 만족하고 사회복지사를 졸업하게 생겼다. 사회복지사여 이제라도 일어나자 정말 울고 싶다.
'사회복지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회복지사가 좋은 일하는 사람이 아닌 이유 (3) | 2025.04.09 |
---|---|
예안면 마을복지계획단 홍보시안을 만들어 봤네요 (미리캔버스) (0) | 2023.04.13 |
길안면 마을복지계획단 추진 (0) | 2021.12.06 |
사회복지사 전문직 논쟁, 사회복지사 전문직인가? (0) | 2021.12.02 |
[사회복지공무원일기] 고시원 상담의 기억들 (2) | 2021.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