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빈곤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대적 인식
중세 시대의 약자
경제적 관점에서 약자를 정의 내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빈곤입니다. 전통적으로 사회복지에서 행하는 일들은 경제적 약자인 빈민들을 돕는 일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봉건주의 시대에 농노들은 지금처럼 열심히 일한다고 부를 온전히 자기가 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나태와 방종 등에 엄격했던 중세 기독교의 금욕에 가까운 노동 윤리는 영주의 부만 축적시켰습니다. 결과적으로 빈곤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신분제 사회에 걸맞게 주어진 숙명처럼 여기며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부를 축적했다고 신분이 바뀌지 않는 폐쇄적인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경제적 약자인 농노는 그 시절에 신분제 사회를 공고히 지키기 위한 최하위 단계로서 오로지 신분제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존재였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약자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냥 일개미일 뿐이란 얘기입니다. 빈곤의 숙명은 너무나 당위적인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이 때는 약자의 개념 보다 사회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수단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한 방편으로 도움을 줬습니다. 그러니 약자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 사회적 정의나 천부인권사상 따위는 없고 그저 농업 생산력과 군사력을 잘 보존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중세 기독교의 - 좋은 일해서 귀족들이 천국 간다는 논리-가 이를 뒷받침 했습니다. 평등, 인권 사상이 전혀 없던 시절이라 최소한의 인권의식은 기독교의 교리를 기반으로 했지만 당시 기독교가 약자를 위해 존재했습니까? 귀족과 함께 지배계층일 뿐이었지요.
따라서 당시의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은 종교, 사회적으로 대단히 특별하고 은혜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은전(恩典)이란 표현을 자주 쓰곤 합니다. 줘도 그만 안 줘도 그만인 사회이니 도움 받는 것이 약자 입장에서 너무나 고마운 일이 돼버렸습니다.
이 시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해봅시다. 첫째, 신분제 사회입니다. 한 사람의 운명은 철저하게 신분에 속박되어 있습니다. 둘째, 사상과 문화를 결정짓는 당대의 종교적 기반으로 기독교는 국가와 귀족의 지배논리를 뒷받침할 뿐이었습니다.
약자를 돕는 일은 사회를 유지 시키고 귀족들이 천국에 가기 위해 선행을 하는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돕는 행위는 귀족과 농노라는 신분제 구도를 통해 강자의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고 종교적으로 자기만족을 위해 이뤄진 행위입니다.
이렇게 돕는 것을 한 마디로 하면 남을 불쌍히 여겨 돕는다는 자선이라고 표현합니다. 자선행위라는 단어가 가진 이념적 기반은 중세의 은전 행위에서 유래합니다. 신분제 사회에서 강자가 약자를 도운 것이 오늘 날에는 경제적 관점에서 부자가 빈곤한 자를 돕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결론을 종합하자면 중세 시대에 약자라는 개념은 없었습니다. 신분제의 예속과 빈곤은 당연한 시대적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약자이기 때문에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이 되도록 돕는 인권 기반이 아니라 너무도 당연히 빈곤한 삶을 살아가는 제일 밑바닥 인생이었기 때문에 귀족들께서 친히 불쌍히 여겨 종교의 가르침대로-물론 천국에 가고자 하는 의도 때문이지만- 은혜를 베푼 것 것입니다. 불쌍해서 돕는다는 말이 좋은 말 인 것 같지만 빈곤의 역사를 반추해볼 때 썩 유쾌한 말은 아닙니다. 현대의 인권 개념에도 맞지 않는 말입니다.
산업혁명에서 오늘날까지
천년의 중세 시대가 막을 내리고 보이지 않는 손이 활개를 치는 자본주의가 도래하였습니다. 증기 기관은 생산과 삶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증가 시켰고 많은 공장이 들어섰습니다. 짧은 시간에 중세 천년을 능가하는 성장률을 보였습니다.
사회적으로 신분제는 붕괴되고 덕분에 농노들은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삶은 더욱 피폐해졌습니다. 과거에 비록 초근목피를 먹을 지언 정 영주의 보호(?)아래 농사를 지으며 나름의 목가적 삶을 향유했지만 산업화로 농지가 정리되며 농노들은 시골을 떠나 도시 공장의 임노동자가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대략 농노의 신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도시인으로 임금 노동자가 되었다고 하면 해피 엔딩처럼 보여 집니다. 그러나 현실은 혹독했습니다. 초기 자본주의 때 최고의 슬로건은 ‘정부는 시장에 간섭마라, 보이지 않는 손이 모두 해결할 것이다.’입니다. 자본주의 시장이 막 생겨날 때라 시장 만능주의에 굉장한 신뢰를 보낼 때였습니다. 지금과 같이 불공정한 일을 규제할 법도 의지도 없었습니다.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18세기 유럽은 아비규환 그 자체입니다. 5세 아동부터 노동을 했습니다. 키가 작은 아이들은 채탄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당대에 탄광의 가장 마지막까지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장에서는 16시간 노동이 일상입니다. 이 당시 노동자들의 평균 수명이 18-24세이니 일만 죽어라 하다가 정말 일찍 죽어버렸습니다.
봉건주의가 막을 내린 후 도래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 도시인들이 죽어라 일을 하는데도 빈곤을 탈출할 수 없었습니다. 저임금에 16시간 일을 하니 건강할 수 없습니다. 교육 받을 수 없습니다. 불공정한 일을 규제할 법도 없습니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또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저임금에다가 이를 보전해줄 사회적 제도도 없기 때문에 가난을 탈출해보고자 몸부림 쳤지만 노동자의 몸뚱어리 외에 어느 누구도 이러한 불공정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죽어라 일하니 정말 죽어버리고 가난은 탈출도 못하고 봉건시대 보다 더 못한 삶을 살게 되니 한계가 오기 시작하지 않겠습니까? 하나, 둘 시스템에 의심을 품기 시작합니다. 사회주의, 노동운동, 협동조합 등 대안을 찾아 나서기도 했습니다. 자유주의 시대에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빈곤을 탈출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개인의 책임이라 할 수 있을까요? 봉건주의 시대는 신분제의 속박으로 인해 신분 상승이나 부를 축적하기 위한 방법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사회였지만 개인의 자유로운 시장 활동을 통해 부를 쌓을 수 있는 자유주의 시대에 16시간을 일하고서도 빈곤을 탈출하지 못하는 약자가 되어있다면 이 것은 명백한 사회 시스템의 잘못입니다.
과거나 오늘 날이나 개인보다 사회에 더 잘못이 있다는 얘기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꼭 있습니다. 1889년 런던 시민의 빈곤을 조사한 영국의 사회사업가 찰스 부스는 런던 시민 대부분이 빈곤에 시달린다는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사비를 들여 대규모 조사를 벌였습니다. 사회복지 정책론 시간에 시봄 라운트리와 찰스 부스의 요크시, 런던시에 대한 사회복지 조사가 의미있다고 배우고 있지만 찰스 부스의 의도는 잘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아무튼 부유한 집안이었던 찰스 부스는 조사결과 런던 시민 30%가 절망적인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걸 꼭 조사해봐야 할 이유가 사회주의자들에게 “런던엔 빈곤자가 많이 없소”라고 반박하기 위해서였다니 언제나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은 꼭 있기 마련입니다.
초기 자본주의의 무자비함을 겪으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게 됩니다. 자본가들이 16시간씩 노동 시켜서 사람 사는 사회가 계속 유지될 것이라 믿고 계속 밀고 나갔다면 절대왕정을 막 내린 프랑스 혁명처럼 자본주의에 경종을 울릴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당시에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의 바람이 거세지면서 국가와 자본가는 이를 잠재울 묘안을 찾게 되고 결국 체제의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 각종 사회복지 관련법을 제정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채찍과 당근 정책의 비스마르크 입법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결국 그대로 놔두면 현 체제는 노동자 혁명으로 붕괴될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정부와 자본가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1929년의 대공황을 겪으면서 시장의 불완전함을 알게 되었고 개개인의 이기심에 기반 한 자유로운 노력의 총합이 보이지 않는 손을 형성하여 시장을 유지시킨다는 이론은 깨지게 됩니다. 이는 개인이 아무리 노력 해봐도 잘못 된 사회 시스템 때문에 빈곤을 탈출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크게 입증한 것입니다.
현대 사회의 약자
농경사회에서는 가족 단위에서 교육, 생산, 돌봄, 의료 등 모든 것을 했습니다. 사회적 위험도 가족 단위로 감내 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사회는 과학 문명의 발전으로 인간이 기술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복잡다단해졌습니다. 고도로 전문화 되고 분업화 되고 네트워크 되어있어 협업 없이 사회가 돌아가지 못합니다. 결국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사회가 됐습니다. 교육, 의료, 주거, 노후, 주택, 장애, 실업, 범죄, 국방, 치안, 행정 등 사회가 함께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일들이 너무 많아지면서 이런 문제는 단순히 개인 책임이 아니라는 사회적 합의가 사회복지 제도를 만들게 됐습니다.
따라서 구조적 문제로 발생한 많은 사회적 위험은 사회복지 제도를 통해 함께 연대해서 막아내자는 것이 자본주의 300년을 거쳐 오며 경험한 새로운 인간의 지혜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오늘 날 사회적 약자들은 봉건시대의 숙명적 삶을 이어가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며 초기 자본주의 시절의 무방비에 노출된 이들도 아닙니다. 따라서 오늘 날 사회적 약자는 개인의 책임보다는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생겨난 경우가 더 많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국가의 개입을 통해 원조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복지 제도는 자본주의 또는 사회가 더 발전하면 할수록 확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경제가 더 발전할수록 사회문제도 함께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바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문제입니다.
오늘 날 사회적 약자는 거대한 사회 구조에 의해 해를 입은 피해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대상입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공적인 방식으로 사회적 약자를 돕고 있는데 최전방에서 클라이언트와 사회복지사가 제일 먼저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클라이언트를 불쌍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돕는다는 말은 중세 시대의 약자 취급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나와 관계를 형성해야 할 사람을 어떻게 규정짓느냐에 따라 사람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클라이언트를 어떤 사람으로 볼 것인가의 관점에 따라 개입방법도 크게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