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공무원일기] 고시원 상담의 기억들
서울 마포구에서 4년을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근무...
서교동에서 근무할 때 고시원이란 생활공간을 처음 봤다.
주거권 최악인 고시원을 접하다.
서교동은 홍대를 기반으로 한 동네인데 아무래도 마포구에서는 고시원이 가장 많았을 것이다. 등록된 고시원만 82개 정도였으니 그 곳에 지내는 학생, 수급자, 노인,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이 정말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주거권리를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대체로 월세 18-23만원 정도의 방은 침대도 없이 그냥 맨 바닥에서 이불깔고 자며 밥과 김치 정도는 제공되는 곳도 있었다. 가장 열악했던 곳은 18만원짜리 고시원이었는데 이 곳은 밥도 제공이 안되었다. 28만원에서 35만원 선의 고시원은 침대도 있고 컴퓨터용 책상도 있으며 운이 좋으면 방에 딸린 개인 화장실과 세면 공간도 있는 곳이 있었다. 그렇게 주거권이 박탈된 곳인 고시원에서도 양극화가 있었으니 한 곳은 월세 70만원 고시원이 있었다. 고시원으로 등록되어 있었지만 사실 프론트 데스크도 있고 외부인도 출입을 못하게 하는 풀옵션 고급 원룸이라 봐야할 것이다.
아무튼 대개는 주거취약 주민들이 고시원의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고시원의 장점은 밥과 김치 정도는 제공되며 조리와 세탁시설이 있어 몸만 들어가도 그런대로 생활은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한 평남짓한 공간에서 사방에 벽을 마주하고 있어야 하니 관계단절로 인한 고립감은 인간의 존엄성 마저 상실하게 한다.
고시원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살지만 특히 기초생활수급자 주민들이 고시원에 산다는 것은 몇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이는 개인을 둘러싼 환경적 요인들로서 당사자 개인에 대한 낙인이나 부정적 인식이 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미리 얘기하고 시작한다.
첫째, 사람들과의 관계단절이다.
주로 가족과 관계가 단절된 사람들이 많다. 물리적으로 나와 손님을 맞이할 만큼의 공간이 확보되어야 사람간의 교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고시원은 손님을 맞이할 수도 없고 더군다나 가족은 더더욱 초대할 수도 없는 곳이다. 대체로 관계가 단절된 후 나만의 공간이 사라진 빈곤 주민들이 마지막으로 택하는 곳이 고시원이기 때문이다.
둘째,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빈곤의 마지막 공간이다.
수급비로 생계/주거급여를 받지만 생활비의 절반 이상을 주거비용으로 할애해야 한다. 적어도 원룸에 한 번 살기 시작하면 세간살이를 준비해놓고 내 것이란 소유개념이 생겨 어떻게든 보존하면서 주거공간을 확보하고 이사를 다니면서 삶을 이어가지만 고시원에 들어간다는 것은 세간살이 그 마저도 모두 상실하였거나 아에 준비가 안된 상태를 말한다. 일단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살림살이를 다시 준비해야하니 고시원에 안주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임대주택이 당첨됐지만 고시원의 생활방식에 익숙해지면서 나오지 않으려는 주민을 본 적이 있다.
셋째, 사회복지사 때문에 오히려 인격과 자존심의 상실을 경험할 때가 있다.
고시원에 사는 당사자는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려는 인격과 자존심을 분명 가지고 있겠지만 사회복지사, 후원자, 자원봉사자 등 사회복지 공급자들은 일부이긴 하지만 고시원에 사는 주민들에 대해 불편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가지고 있다. 사회복지사가 고시원 주민에 대해 좋지 않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으면 결국 주민과 진실된 관계를 형성할 수 없기에 당사자의 인격과 자존심을 제대로 지켜줄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실제로 경험한 몇 가지 예를 들자면 고시원에 수급자 상담을 나간다고 하면 "주임님~ 혼자 가셔도 괜찮겠어요?" 또는 '고시원에서 상담할 때는 문을 열어놓고 문쪽에서 상담을 해야한다'라는 말들을 듣는다. 무엇을 뜻하는가? 주민을 잠재적인 위협인자로 인식하는 것 아닌가? 단지 주거 공간이 열악할 뿐 그 곳에 사는 주민이다. 그렇게 인식하고 시작하면 된다. 좁고 컴컴하고 폐쇄적인 공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부정적 인식이 그 곳에 사는 사람에게 까지 전이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불편한 사고방식이다.
그래서 고시원에 계시는 분들의 특징을 잘 알고 더욱 배려하고 진중하게 얘기를 나눠야 한다.
첫 상담 가서 "아이고~ 이렇게 좁은데서 답답해서 어떻게 지내세요?" 이런 썅~ 누가 답답하고 좁은거 모르나? 꼭 그렇게 확인시켜줘야 하는 건가? 차라리 말을 하지말라!! 고시원에 상담갈 때 그래서 더욱 공손하게 미리 전화드리고 방 안에서 만날 것인지 사무실에서 만날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제가 차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라든지 이런 방식으로 만나왔다. 차를 한 잔 대접하고 상담했을 때 어떤 분은 다음에 자기가 차를 대접하겠다며 다시 만난 적도 있다.
보통의 사람살이가 내가 한 번 사면, 다음에 나도 한 번 사겠다고 한다. 그렇게 상대를 존중하고 예를 지키며 보통의 사람살이처럼 해주니 당사자도 기쁘고 나도 기분이 좋을 때가 있었다. 또 어떤 분과는 고시원 식당에서 라면을 먹으면서 상담한 적도 있었다. 라면이야 고시원에 기본적으로 비치된 것이었고 자주 오는 손님 대접을 자기 공간에서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서로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고시원에 주민들 만나러 가는 일이 좋았다. 좁은 공간에서 서로 가까이 마주하고 도란도란 얘기하다보면 더 깊은 얘기까지 나누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려운 일들도 안타까운 일들도 많았다. 고시원에서 마지막을 맞이하신 분, 술을 너무 많이 드셔서 응급실로 실려가신 분, 한 때는 홍대에서 장사도 크게 하시고 주민위원도 역임하시다가 사업 실패로 고시원에 은둔하시는 분, 조현병을 앓는 아들과 함께 각 방의 고시원에서 사는 분 등 안타까운 사연이야 말로 다 어떻게 하랴.......
고시원 상담에서 분명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긴하다. 그 것은 초기 상담을 나갈 때는 기 상담내용이 있다면 꼼꼼하게 읽어보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뭐 기본 중에 기본이 아닐까해서 더 얘기 않겠다.
안동시 길안면으로 내려와서 고시원은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지금도 나에겐 고시원에서 지내고 계실 그 때 그 주민분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다들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정말 다들 어려움 없이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사거리에 있는 영O고시원, 클OO고시원, 마OO고시원 등등 생각난다...화재없이, 사고없이, 어려움 없이 정말 다들 잘 지내시길요....
길안면행정복지센터 김신기철 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