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총량은 늘어도 빈곤의 굴레는 여전하다
자본주의 임노동자의 굴레는 여전히 진행중
체제에 순응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체제 안에 묶여 톱니처럼 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임노동자들이다. 주체의식 없이 톱니처럼 살아가다보면 정말 체제의 부품으로 전락해버린다. 지금 사는 세상은 보편 타당하다 할 수 있는가? 끊임없이 의심하고 반문해봐야 한다. 자본주의가 태동한 유럽에서 하루 16시간의 노동을 감내해야했던 노동자들의 삶이나 지금의 삶은 여러모로 질적 양적 환경의 변화가 있었을 뿐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는 동일하기에 우리의 삶이 더 나아졌다고 볼 수 있을까? 자동차를 끌고 다니고 스마트폰이 있고 주말 여행을 다닐 자유가 있지만 자본주의의 체제안에서 무한 임노동의 굴레는 벗어날 수 없다는 점 마음이 아프다.
자본의 총량이 증가했지만 불평등으로 빈곤 해결 안 돼
초기 자본주의 시절에도 복지와 관련된 여러 제도들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동일한 점은 결국 복지 관련 제도들이 근본적인 빈곤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근이 살아가게만 할 뿐. 자본의 총량이 얼마나 증가했는가? 물자는 넘쳐나 어느 나라에서는 시장 가격 조절 때문에 버리고 어느 나라에서는 그 이상의 가격을 지불해도 물건을 못 구해 난리다. 아니면 아에 돈도 재화도 없든가 ... 전 지구적으로 봤을 때 과학과 자본은 충분히 발전했지만 '기회의 평등'이란 기가막힌 타이틀은 자본주의 경쟁체제를 합리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불평등의 요소로 점차 고착화 되고 있다.
천년 후의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
단순히 자본의 총량 증가만 보더라도 인류를 빈곤의 나락에서 몇 번이나 구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유럽 자본주의 역사를 공부할 때 왜 다수가 소수의 자본가를 이기지 못했을까 답답했지만 지금 우리도 그리 사는 것을... 한 천년 후에 자원의 고갈과 환경의 재앙적인 문제로 인해 결국 지구 공동체로 공생의 길을 모색하는 시대가 온다면 다시금 오늘 날의 역사를 보며 그 시절의 사람들도 답답해하겠지... 20세기들어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전 인류가 먹고 살만해졌는데 왜 저렇게 서로 싸우고 더 가지려고 난리쳤던 것일까 하고....
과학 발전이 군비경쟁이나 소수 독점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 전인류의 공생을 향한 발전으로 이어가야한다. 파괴를 통한 창조는 이제 멈출 때가 됐다. 환경 문제로 따진다면 인류의 종말은 벌써 시작됐다
[출처] 사회복지공무원 일기 - 자본의 총량은 늘어도 빈곤은 여전히 해결 안되고 있다.|작성자 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