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일기

청소년흡연 문제 아이들의 마음을 먼저 읽어야

시골공무원 2021. 9. 28. 16:18

청소년 흡연을 훈계하던 어른이 봉변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해진 요즘 어른의 도리(?)를 하기 위한 청소년의 훈계와 지도는 목숨을 걸어야할 만큼 위험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안동지역에서도 대로에서 공공연히 흡연을 하는 청소년들과 입을 닫고 그들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어른들도 함께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청소년보호법 상으로 청소년에게 담배 판매를 금지하고 있지만 현행법상에서는 흡연중인 청소년들을 직접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는 관습적으로 흡연 청소년을 보면서 “어린 녀석이 어디서 담배를 피우느냐?”, “세상 참 잘 돌아간다, 옛날 같으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라고 흡연 청소년의 행동을 괘씸하고 불경하게 생각하고 야단을 친다. 그렇다. 옛날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세상이 바뀌었다. 지금의 어른들이야 먹고 사는게 힘들어도 마을 안에서 이웃과 어른과 만나면서 마을을 기반으로 하는 삶을 살았지만 멀티미디어, 사이버, 하이테크 각종 수식어를 붙여야만 설명이 가능한 이 복잡 하면서도 피곤한 세상에 놓인 아이들에게는 이웃과 단절된 세상이 바뀐 게 사실이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소통 없는 세상을 어른들이 만들어 놓고 아이들에게 소통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체 변화된 세상의 아이들을 따라가지 못하니 어른들의 훈계가 먹힐 리 없다. 청소년 흡연 문제에 대한 연구논문들을 보면 흡연의 원인이 또래집단의 영향, 가정환경, 충동성, 학교 부적응, 자아존중감의 저하 등이 높은 순으로 나타난다. 또래집단, 가정환경, 학교 등은 환경적 요인이고 충동성과 자아존중감은 개인의 심리적 요인들이다. 청소년기는 성인도 아동도 아닌 주변인의 단계로 질풍노도의 그야말로 정서적 폭풍우에 시달리는 시기이다. 흡연의 요인을 단순히 어린 녀석이 못 할 짓 했다라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대부분 흡연 행위 그 자체를 가지고 비난하듯 아이들을 훈계하면 더 큰 반항심만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더구나 지금은 “옛날 같으면 ...” 이 아닌 시대지 않은가?

 

지난 주 내가 일하는 사회복지관 화장실에서 몰래 흡연을 하던 중학교 1학년 남학생 두 명을 현장에서 발견하여 곧바로 면담을 하였다. 이름과 학교, 집 전화번호를 물으니 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얼버무리며 대답하는 모양새가 거짓말이다. 나는 솔직한 심정을 말하였다. “너희를 혼내든, 집에 알려 아버지께 죽도록 맞든지 간에 그렇다고 너희가 담배를 끊는 것도 아니니 집과 학교에 알리지는 않겠다. 그러나 학교에 전화를 걸어 인적사항을 확인해보고 순간의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쳤다면 뒷일은 너희 책임이다” 두 녀석은 곧바로 이름과 학교를 실토하였고, 학교에 인적사항을 확인하였다. 그 후 “얼마나 힘들면 너희들이 담배까지 피우느냐?”라고 시작하여 간단한 가정사를 들은 후 어려움이 있을 때 다 시 한번 찾아오라고 당부를 하였다. 잠시라도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었더니 돌아갈 때 한 녀석은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가정사를 듣고 답답한 마음도 들어보니 담배라도 피워야 하는 너희 마음이야 오죽하겠느냐?, 어쩌면 청소년들의 흡연은 “저 너무 힘들어요”라는 사회와 어른에 대한 일종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흡연하는 애들을 보면 삼단 오단 날아차기로 버릇을 고쳐야한다고 말하는 인터넷 악플을 볼 때 마다 가슴이 무너진다. 아이들과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어느 누구 하나 왜 아이들이 그렇게 힘들어 하는지 먼저 물어보지 않는다. 규범적인 얘기지만 아이들이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있는 믿을만한 다양한 공간이 필요한데 우리 지역은 여전히 아이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각종 상담소들 밖에 없다.

 

우리 지역의 학교, 종교단체, 문화단체, 청소년 단체 등 공공 기관과 각종 사회단체들은 청소년들을 우려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훈계, 지도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청소년에 대한 책임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접근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