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 서교동주민센터에서 근무하며
2016. 8. 18 - 영구임대 아파트 접수를 하면서 쓴 글 입니다.
영구임대 아파트를 접수하고 있습니다. 영구임대 그 어감부터 참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영구히 임대아파트에 살아가라는 말인지요? 물론 그렇지 않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영구적으로 임대 단지에 몰아넣는다는 표현인 것 같아 참으로 말 쓰기가 송구스럽고 죄송합니다.
각자의 구구절절 안타까운 사연들이 있지만 점수 선정표 상으로 안내를 하게 되면 사람이 고기 등급 마냥 매겨집니다. 참으로 얼굴 들기 부끄럽습니다. 복지자원을,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점수를 매기고, 평가를 하고, 순위를 부여 합니다. 그리고 맞춤형이란 말로 포장합니다. 공급자 입장에서 그리해도 되겠다 싶습니다. 일정부분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당사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끔찍합니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으니 당사자는 효율화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자원이 부족하여 스스로가 효율화의 대상이 되었다고 상상해봅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상실당하기 십상입니다. 때로 사회적 약자이다 보니 시스템 효율화의 대상이 되어도 그러려니 합니다. 그러나 사회복지 실천 현장의 최일선에서 당사자를 만나는 사회복지사는 이러한 시스템의 송구스러움을 적어도 당사자와의 좋은 관계로 조금이나마 해소시켜드려야 합니다. 그 일은 바로 예와 정성을 다해 당사자와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오늘 국가유공자 어르신께서 다녀가셨습니다. 당사자의 처지와 상황에 맞게 저는 어르신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르신, 나라를 지켜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후손들이 이렇게 제대로 대접해드리지 못한 점 대신 사과를 드립니다. 이 번 영구임대 아파트가 꼭 당첨됐으면 좋겠습니다.”
임대 아파트 신청으로 많은 분이 기다렸습니다. 눈 마주치는 분마다 정중히 인사드리고 설명 드렸습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앞에 분 상담이 거의 끝나 갑니다. 5분 정도 기다리시면 될 것 같고, 다음 분은 10분 정도 기다려주시면 제가 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더운데 시원한 물 한잔 드릴까요?
예산이 소요되고, 기획을 해야 하고, 등급을 매겨서 하는 일이 아니기에 더욱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진심을 담고 상황과 처지에 맞게 당사자와 관계 맺었다면 상대의 인격과 나의 인격을 잘 지켜나간 것입니다. 이로써 동 주민센터라는 공공 기관에 대한 심리적 불편함도 해소하고, 찾아와서 귀한 대접받고 가니 다음에 또 오고 싶고, 자주 오게 되니 친해지고, 그러다 보면 가끔 큰 소리치던 주민들의 목소리도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이제까지 관계로서 만나지 못하고 서로 잘 몰랐기 때문에 불편하고 때로 소리치고 그랬던 것입니다. 임대아파트 접수를 통해 주민들과 귀한 만남의 시간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오래 기다려주시고 잘 몰라 서툰 설명도 이해해주신 주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주택문제가 참으로 문제 입니다. 서울에는 주거비용이 너무 비싸고 과밀하고 시골엔 땅과 집이 남아돕니다. 그럼에도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가지 못하는 것은 바로 생태 입니다. 내가 살아온 또는 관계 맺어온 지역을 떠나는 것은 너무 힘든 일 입니다. 마포에서 은평으로 가면 영구임대주택이 꼭 될 것 같은데 그러함에도 옮기지 않고 당첨가능성이 낮은 마포를 고집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생태 때문입니다.
절박한 주거문제와도 바꾸지 못하는 생태, 관계, 삶 그 것을 인간답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야 말로 사람답게 살아가는 자기결정권의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
어느 지역으로 옮겨가게 되면 집 문제도 해결되고 여러 다른 문제도 해결되겠지만 내가 살아온 기반을 떠나지 않는 일은 자기 삶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태를 지켜나가는 존엄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출처] 사회복지공무원일기 - 영구임대주택 접수를 하면서 느낀 것들|작성자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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